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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자겸(李資謙·인천이씨 5세)
연수문화원
2015-06-15 15:09:00
이자겸은 경원백(慶源伯) 이 호의 아들이다. 그는 벼슬길에 올라 합문지후에 이르렀다가 누이동생인 순종비가 순종이 죽은 뒤 관노와의 부정이 있어 연루되어 면직되었다가 예종 3년 둘째딸이 예종비가 되자 일약 개부의동삼사수사도 중서시랑동중서문하평장사(開府儀同三司守司徒 中書侍郞同中書門下平章事)가 되고 소성군개국백(邵城郡開國伯)에 봉해졌다.
예종이 죽고, 연소한 태자 인종이 계승하자 왕위를 탐내던 왕자들을 모두 물리치고 태자를 즉위케 하여 양절익명공신(亮節翼命功臣)이 되고, 중서령 영문하상서도성사 판이병부 서경유수사조선공이란 요직에 오르고 자기집에 부(府)를 설치하여 정치를 임의로 하였다. 그는 인종에게 강요하여 셋째 딸과 넷째 딸을 비(妃)로 삼게 함으로써 권세를 독차지하고 태자와 동등한 대우를 받아 자기의 생일날을 인수절(仁壽節)이라 했다.
한편 심복들을 요직에 올려놓았으며, 매관매직과 뇌물로 거부가 되었다. 인종 4년에는 지군국사(知軍國事)의 직위를 탐내어 왕의 노여움을 샀다. 이에 왕의 뜻을 받은 상장군 최탁(崔卓)·오탁(吳卓)과 대장군인 권수(權秀)등이 거사하여 그를 체포하려고 하자 실패하여 그들은 모두 살해되고 이 난으로 궁궐은 불타버려 왕은 연경궁에 기거했다. 이때부터 국사를 한손에 쥐고 권세를 부리다가 이듬해 반역을 꿈꾸고 왕비를 시켜 수차 왕을 독살시키려 했으나 왕비의 거부로 실패했다. 이때 그와 반목하던 척준경(拓俊京)이 왕의 부탁을 받고 병부상서 김향(金餉)과 함께 일으킨 거사로 잡혀 영광(靈光)에 유배되어 귀양지에서 죽고 말았다.
한편 그의 부인과 아들 이공의(李公儀)도 귀양살이를 하게 되었다. 그후 20년의 귀양살이를 하였는데, 그때 인종이 병이 들어 백약이 무효라 궁중에서 무당을 불러들여 점을 치니 왕의 외조부 이자겸의 빌미라는 것이다. 그래서 왕은 외조모와 외삼촌인 이공의의 죄를 사면해 주고 고향인 인천에서 살게 하였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