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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희량(鄭希良·해주정씨)
연수문화원
2015-06-15 15:08:00
자는 순부(淳夫)이고 호는 허암(虛庵)이다. 부사(府使) 정연경(鄭延慶)의 아들로 태어나 사림파(士林派)의 종조(宗祖)인 김종직(金宗直)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1492년(성종23년)에 수석으로 생원(生員)에 합격했다. 1495년(연산군1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한림(翰林)이 되었다가 소장(疏章)을 지은 죄로 귀양갔다. 1497년(연산군3년)에 예문관대교(藝文館待敎)보직되어 「임금이 마음을 바로잡고 경연(經筵)에 근면하여 간언(諫言)을 받아들이고 현사(賢邪)를 분별하며 대신(大臣)을 경대(敬待)하며 환관(宦官)을 억제하며 학교를 숭상하고 이단(異端)을 물리치며 상벌(賞罰)을 공평히 하고 재용(財用)을 절제할 것들을 상소하여 왕의 미움을 샀다. 1498년(연산군4년)에 사하독서(賜瑕讀書)를 하였으며 이해에 무오사화(戊午士禍)가 일어나「난언(亂言)을 범하고 난(亂)을 고하지 않았다」는 혐의로 의주(義州)에 유배되었다가 김해(金海)로 이배(移配)되었으며 1501년(연산군7년)에 풀려났다. 1502년(연산군8년)에 모친상을 당하여 집상(執喪)하던중 장차 갑자사화(甲子士禍)(연산군10년)가 일어날 것을 미리 짐작하고 표연히 집을 나가 김포(金浦)강변에 상복(喪服)과 짚신을 벗어놓고 자취를 감추어 세상 사람들이 모두 강물에 빠져죽은 것이라고 하였다 한다. 또 일설에는 개풍군 풍덕(豊德)에서 수묘(守墓)하다가 자취를 감추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뒤 정희량(鄭希良)은 이천년(李千年)으로 변성명하고 산사(山寺)를 유력(遊歷)하다가 만년에 평북 정주군(定州郡) 심연동(深淵洞)에서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다고 한다. 정희량은 성질이 강건하고 영달에 마음이 없었으며 문장과 시(詩)에 능하고 음양학(陰陽學)에도 밝았다. 정희량이 김포강변에서 자취를 감출 때 지었다고 하는 다음과 같은 시가 전하고 있다. 「일모창강상 천한수자파 고주의조박 풍랑야응다(日暮滄江上 天寒水自波 孤舟宜早泊風浪夜應多)」
그의 호 허암(虛庵)은 그가 거주
하던 부평 계양산(桂陽山) 서북쪽 허암봉(虛庵峰)에서 유래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