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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인재 - 문화재자료 제5호 , 연수구 연수동 2동 584
연수문화원
2015-06-15 14:44:00

원인재는 인천이씨 중시조인 이허겸의 재실이다. 팔작지붕 형식인 이 건물의 건립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32대 손이 쓴 [원인재기]와 33대 손이 쓴 원인재상량문이 있는 것으로 보아 순조 7년(1807) 또는 고종 4년(1835)인 것으로 추측된다.

원인재는 신연수역과 원인재 역을 잇는 길 중간에 있다. 인천이씨 중시조 이허겸을 모신 재실로, 원인재 옆에는 소나무가 병풍처럼 둘린 언덕 한가운데에 시조 이허겸의 묘소가 있다.
원인재가 위치한 연수동 548번지 일대는 과거에 간치도라 불렸다. 우리말로 풀이하면 ‘까치섬’이다. 이곳을 칭하던 또 다른 명칭으로는 ‘연화부수지’가 있는데, 이 말은 연꽃이 물 위에 떠 있는 형상을 말한다. 실제로 시조 이허겸의 묘소가 자리한 언덕은 송도 갯벌이 연수구가 개발되기 전만 하더라도 물이 들어오던 곳으로, 마치 작은 섬이 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시조 이허겸 묘가 1천여 년이 넘도록 이 자리를 고수해 온 것에 반해, 원인재 자리는 여기가 아니었다. 현 인천여고 부근에 있던 것을 연수택지개발공사로 철거당하게 되자 인천이씨 대종회가 나서서 이곳 묘소 자리로 옮긴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인천시로부터 자연녹지로 지정된 토지 일부를 불하 받아 부지를 조성했고, 지방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인정돼 인천시문화재 자료 제 5호로 지정되면서 지방문화재 복원에 필요한 자금도 얼마간 지원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허겸을 시조로 모시는 인천이씨의 본래 선대는 가야국 김수로 왕의 둘째 아들로 전해진다. 이후 고려조가 들어서면서 인천이씨는 본격적으로 권력과 영화를 누리게 된다. 인천이 7대 어향이라고 불렸던 것도 인천이씨 일가에서 왕의 내외향이 나온 것에서 비롯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