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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산서원
연수문화원
2015-06-15 14:29:00
문학산 사모지고개를 넘어 학익동 방향으로 내려가다 보면 곧바로 50여 채의 허름한 가옥이 몰려 있는 마을이 나온다. 산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이 마을(남구 학익동 83번지 일대)이 형성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쯤이라고 한다. 그전엔 2~3채 정도 가옥만 있었다고 한다.

이 마을 안에는 ‘학산서원지’라고 쓰인 비석이 하나 있다. 이 비석은 이 일대가 과거 서원이 있던 터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학산서원의 건립 시기는 조선 숙종 28년(1708년)으로 기록돼 있다. 당시 학산서원은 정부가 인정해준 교육기관이었다. 학산서원의 규모는 다른 향교와 비슷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숙종 당시 서원은 전국에 3백41개에 이를 만큼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유독 인천에만 서원이 없었다고 한다. 영일정씨, 부평이씨 등 내로라하는 인천지방 유림들이 서원설립을 추진하였으나 좀처럼 왕의 사액을 받지 못해 서원설립은 지연됐다. 당시 서원의 과다한 설립으로 지방곳곳에서 적잖은 폐단이 발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따라 인천지방 유림들은 인천부사로 있으면서 선정을 베풀고 주민교육에 공이 컸던 이단상을 기리고 후진양성을 위해 유림 수백명의 서명을 받아 숙종에게 서원설립을 요구하는 청원상소를 제출했다. 이렇게 설립한 학산서원은 다른 지역의 서원과 마찬가지로 지방의 사설교육기관인 동시에 도서관, 제사의 기능을 맡고 있었다. 이중 서원에서 가장 주안점을 둔 것은 교육기능이다.

공교육기관인 향교가 과거시험을 보기 위한 기초교육에 치중한 반면 서원은 과거시험과는 상관없이 선비들 스스로 학문을 연마하고 후진양성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그래서 교육내용도 향교보다 깊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학산서원은 선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냈던 곳이기도 하다. 조선사회는 충효를 중히 여기는 유교이념에 따라 서원에서의 제사기능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이곳 학산서원도 인천부사 이단상과 그의 아들 이희조를 성현으로 모시고 제사를 지냈다. 

인천의 사설교육기관으로써 중요한 역할을 했던 서원이 사라진 것은 고종 2년(1865) 때다. 오래 전에 없어진 까닭에 현재 학산서원은 1955년 인천시에서 비석을 세운 것 말고는 흔적을 찾아볼 수 없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