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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산(232m)과 역사의 숨결
연수문화원
2015-06-15 14:28:00

문학산은 인천도호부(조선시대의 인천지방관청)의 남쪽에 위치해 있다. 이런 연유로 남산이라고도 불렸으며, 학의 모습과 같다하여 학산, 산꼭대기에 봉수대가 있어 봉화둑산이라 불려왔다. 성산, 배꼽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으며 길마산, 수리봉, 문학산 정상, 연경산, 서달산 등이 동에서 서로 길게 이어지며 산맥을 이루고 있어 연수구의 지붕과도 같은 산이다.

문학산은 기원전부터 역사에 등장하고 있다. 비류백제설이 그것이다. 삼국사기 백제건국 설화에 보면 비류가 미추홀에 도읍했다는 사실이 전해져 오고 있는데 여지도서, 인천도호부 고적조에는 ‘문학산 정상은 미추왕(비류)의 고도’라 하였다. 안정복은 동사강목에서 ‘문학산에는 비류의 성터가 있고 성문의 비판이 아직도 남아 있으며 성내에는 비류가 파 놓은 우물이 남아 있다(백제우물)’고 서술하면서 ‘동국여지승람’에 그것을 기록하지 않은 것을 개탄한 바 있다.

[세종대왕실록]에도 ‘인천에 성이 있어 이곳을 미추홀 고성 혹은 남산고성이라고 불렀는데 성내엔 작은 샘도 있다’고 전하고 있다. 열거한 기록에서도 보이듯 문학산은 비류백제와 함께 해온 연수구의 주산이다. 문학산 정상에 처음 비류가 쌓았던 성은 여러차례 보수했을 것으로 보이는데 1492년 임진외란 때 인천부사 김민선이 성을 수리하여 왜적을 물리쳤다고 한다. 당시 왜군들은 문학산성 동문 밖 1백여 보 되는 곳에 주둔했었다. 수리봉 부근에는 왜적들이 쌓았다는 왜성터의 흔적이 남아 있기도 하다. 현재 문학산성은 약 220m정도가 남아 있어 인천광역시 기념물 1호로 보존되고 있다. 정상에는 김민선장군의 사당인 안관당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