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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문화재자료 5호 - 원인재(源仁齋)
연수문화원
2015-08-03 10:55:16

인천광역시 문화재자료 5호

 

원인재(源仁齋)

 

 

소재지 : 연수구 연수동 584 인천 연수구 경원대로 322 (연수동)

 

 

원인재는 이허겸(李許謙)을 중시조(中始祖)로 하는 인천 이씨의 재실(齋室)로 1990년 11월 9일에 인천광역시 문화재 자료 5호로 지정된 건물입니다. 정면 4칸, 측면 2칸의 8칸짜리 팔작지붕의 기와집인 원인재는 원래 지금의 인천여고와 주공아파트 인근으로, 연수동 적십자 요양원으로 들어가는 왼쪽에 해당하는 신지마을에 있었습니다.

 

32세손이 쓴 ‘원인재기(源仁齋記)’와 33세손이 쓴 ‘원인재상량문(源仁齋上樑文)’을 통해서 1807년(순조 7)이나 1835년(헌종 1)에 건축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명칭을 원인재라고 한 것은 인천이 인천 이씨 각파의 근원이 되기 때문입니다.

 

1980년대 후반부터 진행된 연수택지개발사업으로 인해 마을이 사라지게 되자 원인재 건물은 1994년에 해체되었고, 현재의 연수동 584번지(경원대로 322)인 이허겸의 묘역 옆으로 옮겨져 1999년에 복원이 정식 완료되었습니다.

 

이허겸의 조상은 신라 경덕왕 때의 아찬 허기인데, 그가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당시 안녹산의 난으로 쫒기던 현종을 잘 모신 공을 인정받아 황제의 성인 이씨 성을 하사받고 귀국하게 됩니다. 이에 경덕왕은 허기를 칭찬하여 소성백에 봉하였는데, 소성은 바로 인천 땅을 말하는 것이지요. 허기는 이때부터 자신의 성을 당나라 황제의 성인 이씨와 원래 조상의 성인 허씨를 같이 써서 ‘이허’라는 복성을 쓰게 되지요. 그의 후손인 고려시대의 이허겸은 자신의 외손녀 3명이 고려 8대 임금 현종의 비가 되면서 외척의 반열에 오르게 됩니다.

 

그의 손자 이자연은 고려 제11대 임금인 문종에게 세 딸을 시집보내면서, 막강한 권력을 가지게 됩니다. 특히 첫 딸인 인예순덕태후는 12대 선종, 13대 순종, 15대 숙종과 대각국사 의천을 낳았습니다. 한편 이자연의 손자인 이자겸은 16대 예종의 장인이 될 뿐 아니라, 17대 인종 임금에게도 자신의 딸들을 다시 시집보낼 정도로 엄청난 권력의 소유자였지요. 고려 말기인 공양왕 2년(1390)에 인천을 ‘칠대어향(七代御鄕)’이라고 칭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이처럼 인천이 문종에서 인종에 이르는 7대 동안 왕의 외향(外鄕)이거나 왕비의 내향(內鄕)이었기 때문이지요.

 

 

-1980년대 원인재 모습-

 

 

 

-1999년 복원된 원인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