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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휘량[鄭翬良]
연수문화원
2015-08-01 12:38:51

 

이조판서, 병조판서, 우의정 거쳐 좌의정까지

 

정휘량[鄭翬良]

 

 

 

 

조선 영조 임금 때 좌의정을 지낸 정휘량(1706~1762)은 영일 정씨 승지공파 5세손인 아버지 판돈녕부사(判敦寧府事) 정수기와 어머니인 파평 윤씨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자는 자우(子羽), 사서(士瑞), 호는 남애(南崖)입니다. 우의정을 지낸 정우량의 동생이며, 할아버지는 정인빈, 증조할아버지는 강원도관찰사 정시성이지요.

 

1733년(영조 9)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고, 1737년(영조 13) 별시 문과에 을과 2위로 급제하여 중앙 관직에 나아갑니다. 시독관, 홍문관 응교(弘文館應敎) 등을 지낸 후 1756년(영조 32)에 홍문관 제학을 거쳐 대제학에 오릅니다. 이후 호조판서, 공조판서, 이조판서, 병조판서를 두루 역임하고, 평안도 관찰사(平安道 觀察使)를 지낸 후 1761년(영조 37) 우의정을 거쳐 좌의정이 됩니다.

 

정휘량은 당시에 소론(少論)의 제거를 주장하면서, 소론의 영수들을 공격하는데 앞장섰던 대표적인 인물 중 한 사람입니다. 소론의 영수였던 조태구·유봉휘 등을 역적으로 몰아 노비가 되도록 할 것과, 이광좌(李光佐)·최석항(崔錫恒) 등의 관직을 박탈하도록 청하였답니다. 자신은 그후 곧바로 사직하여,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의 한직으로 전직하여 말년을 지낸답니다.

 

정휘량이 정승까지 오르는 과정에는 붕당의 폐단을 없애려는 영조의 탕평책이 시행되는 가운데 적절한 운신과 조문명(趙文命), 조현명(趙顯命) 등의 후원이 컸습니다.

또한 조카인 정치달과 그의 처인 화완 옹주의 도움도 있었답니다.

 

정휘량은 1762(영조38)에 사망했고, 묘는 동춘동 영일정씨 묘역에 위치하고 있습니다.『남애집(南崖集)』이라는 문집과 『견사록(見思錄)』이라는 저서를 남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