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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량[鄭羽良]
연수문화원
2015-08-01 12:37:07

병조판서를 거쳐 우의정에 오른 학남대감

 

정우량[鄭羽良]

 

 

 

 

 

영일 정씨 승지공파 6세손인 정우량은 1692(숙종 18) 판서 정수기와 파평 윤씨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강원도관찰사 정시성의 증손이고, 할아버지는 정인빈입니다.

자는 자휘(子翬), 호는 학남(鶴南). 시호는 문충(文忠)입니다. 영조 때 좌의정이었던 휘량(翬良)의 형입니다.

 

1723년(경종 3)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관직으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1727년 정언이 되어 당시 백성들을 효유(曉諭)하는 왕의 교서를 한글로 번역하여 각도에 반포하였습니다. 부수찬으로 시독관(侍讀官)을 겸임할 때 왕에게 이황(李滉)과 이이(李珥)의 문집을 출판할 것을 주청하여 간행하도록 하기도 했습니다.

 

지평·대사성을 역임하고 좌승지 때에는 공종수(孔宗洙)를 선성(先聖)의 후예로 추대하고 반궁(泮宮)에 두어 녹(祿)을 지급할 것을 소청하여 시행하기도 했습니다. 이조참판 당시 민통수(閔通洙)와 사이가 좋지 못하여 이천부사로 좌천되기도 했으나 우참찬이 된 뒤에는 한성부에 있는 서북인을 등용하여 인심을 수습할 것을 주청하였습니다.

 

1749년(영조 25) 병조판서를 거쳐 우의정에 올랐으며 그 뒤 판중추부사가 되었습니다. 1754년(영조 30)에 사망했고, 묘는 현재 아버지 정수기, 동생 정휘량과 함께 영일정씨 묘역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글씨에 능하여 작품으로 개성계성사비문(開城啓聖祠碑文)을 남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