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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기(鄭壽期)
연수문화원
2015-08-01 12:01:52

영의정에 추증된 우의정과 좌의정의 아버지.

 

정수기(鄭壽期)

 

 

 

 

영일 정씨 승지공파 5세손인 정수기는 강원도 관찰사를 지낸 정시성(鄭始成)의 손자이자, 정인빈(鄭寅賓)의 아들로 1664년(현종 1)에 태어났습니다. 자는 순년(舜年), 호는 곡구(谷口)입니다. 영조 때 우의정을 역임한 정우량(鄭羽良)과 좌의정을 지낸 정휘량(鄭翬良)의 아버지랍니다.

 

1699년(숙종 25) 36세 되던 해에 증광시(增廣試) 병과(丙科)에 9위로 급제하였으며, 1713년 세자시강원 사서에 임용되었습니다. 1722년 사간원 정언으로서 경종(景宗)의 대리청정을 주청한 김춘택 등을 탄핵한 것으로 인해 1725년(영조 1) 신임사화의 주동 인물로 탄핵되어 강현(姜鋧)·이조(李肇) 등과 함께 벼슬과 품계를 빼앗기고 제명되었습니다.

 

1727년(영조 3) 대사간으로 복직되었으며, 후에 승정원 승지·대사성·대사간·공조 참판 등을 역임하고, 1734년 개성 유수로 나갔다가 1736년에 다시 대사헌으로 임용되어 지돈령부사· 우참찬 · 예조 판서 등을 거쳐 기로당상(耆老堂上)에 올랐습니다. 성격이 강직하여 권세에 아부하지 않았으며 서슴없이 직언하는 곧은 선비의 대명사였습니다. 1752년(영조 28) 사망하였으며, 1753년 영의정에 추증되었습니다.

 

조태억과 권첨, 정수기, 이조 등이 부평에서 만나 나흘간 함께 지내며 수십 편의 시를 지었고, 후에 이것을 첩으로 제작한 것이 조태억(趙泰億)의 『계양수창첩(桂陽酬唱帖)』인데 여기에 정수기의 시가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정수기의 묘는 청량산 영일정씨 묘역에 위치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