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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선(金敏善)
연수문화원
2015-08-01 11:01:41

왜군으로부터 인천을 지켜낸 지도자

 

김민선(金敏善) 장군

 

 

김민선(1542~1592)은 광주(光州) 김씨로, 1542년(중종 37)에 경기도 부평 도호부 지역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김상겸(金尙謙), 할아버지는 김석경(金碩卿), 증조할아버지는 김한수(金漢秀)이고, 어머니는 정건(鄭鍵)의 딸입니다. 자는 달부(達夫)입니다.

 

1564년(명종 19) 식년시에서 급제하여 생원이 되었고, 1572년(선조 5)에 별시 문과에 급제하여 집의(執義)가 되었습니다. 1581년(선조 14)에 경성(鏡城) 판관(判官)의 직책을 고의로 버리려고 그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다 하여 사간원의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습다. 그후 1591년(선조 24)에는 헌납(獻納)에 제수되었습니다. 헌납으로 재직하면서 사간원과 사헌부가 함께 정철(鄭澈)을 탄핵하는 데에 참여하여 정철, 백유함(白惟咸), 유공진(柳拱辰), 이춘영(李春英) 등을 유배시키는데 일조하게 됩니다.

 

김민선은 1592년(선조 25) 인천 도호부사로 부임하여 문학 산성(文鶴山城)을 수축하고, 군량을 모으는 등 일본의 침입에 대비합니다. 전쟁이 나자 인천 각지와 부평, 김포 등지에 격문을 띄워 의병을 모집하고, 방어선을 구축하는 등 인천 사수의 결의를 다지지요.

 

계양산성을 점령한 일본군의 일부는 1592년 5월 20일 인천으로 진격하였습니다. 그러나 김민선(金敏善) 인천 부사가 만반의 방어 태세를 갖추어 안대평(安垈坪: 지금의 간석동)에서 일본군을 격퇴시키지요. 이로 인해 지금의 간석역 앞 하천의 다리를 일본군이 패전하여 흩어진 곳이라 하여 왜산교(倭散橋)라 불러 오게 되었지요.

 

한편 패배한 일본군은 다시 군사를 갖추어 침공하였습니다. 문학산 정상 동편인 수리봉에 성을 쌓고 수차례 공격하였지만, 김민선은 이에 맞서 백성을 이끌면서 문학산성을 잘 사수하였습니다. 하지만 김민선 부사는 전투에 너무 노심초사한 탓으로 과로가 겹쳐 병을 얻고 쓰러졌으며, 끝내 회생하지 못하고 순사(殉死)하였답니다.

 

선조는 김민선 장군이 임진왜란에 참전하여 왜적을 무찌른 전공을 가상히 여겨 도승지에 추증하였으며, 인천 주민들은 문학산 정상에 안관당(安官堂)이라는 사당을 세워 제사를 지냈습니다. 인천도호부 주변 마을 사람들이 매년 두 번씩 제사를 올리는 가운데 문학산 정상과 안관당은 인천의 정신적인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안관당이 불타 버리게 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관당제를 유지해 왔으나 문학산 정상에 공군부대가 주둔하면서 그 명맥이 끊기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