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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로(李仁老)
연수문화원
2015-08-01 11:00:22

시와 서평의 길을 연 고려 무신 정권기의 문인

 

쌍명재 이인로(李仁老)

 

 

 

 

 

인주 이씨인 이인로(李仁老, 1152~1220, 의종6~고종7)는 고려 무신정권기 전후의 문신이자 문인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시집이라고 할 수 있는 《파한집》으로 유명한 시인이지요. 초명은 득옥(得玉). 자는 미수(眉叟), 호는 쌍명재(雙明齋)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일찍 부모를 여의고 고아가 되었지만,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시문과 글씨에 뛰어난 그를 화엄승통(華嚴僧統)인 요일(寥一)이 거두어 양육하고 공부를 시켜서 유교의 경전들과 제자백가서를 두루 섭렵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의종 24년(1170)에 이의방, 이고, 정중부가 무신란을 일으키며 문관들에 대한 잔혹한 복수극을 자행하자, 이인로는 피신하여 불가에 귀의합니다. 그때가 이인로의 나이 19세였지요. 25세에는 환속하여 태학에 들어가 육경(六經)을 배웠고, 1180년(명종 10) 29세 때에는 진사과에 장원급제함으로써 그의 명성이 자자하게 되었습니다.

 

31세 때인 1182년, 금나라 하정사행(賀正使行)에 서장관(書狀官)으로 수행하였고, 다음해 귀국하여 계양군(桂陽郡, 지금의 인천 부평) 서기로 일하였습니다. 그 뒤 문극겸(文克謙)의 천거로 한림원에 보직되어 사소(詞疏)를 담당하였고, 그 후 한림원에서 고원(誥院)에 이르기까지 14년간 조칙(詔勅)을 짓는 일을 주로 했다고 합니다. 이 기간 동안 바쁜 중에도 틈틈이 시사(詩詞)를 지어 주변으로부터 '복고(腹藁)'라며 칭찬을 받게 됩니다. 이후 벼슬은 예부원외랑(禮部員外郎)과 비서감우간의대부(祕書監右諫議大夫)까지 역임하였다고 합니다.

 

이 시기에 이인로는 임춘(林椿) · 오세재(吳世才) 등과 '죽림고회(竹林高會)'를 열고 함께 활동하며 시를 짓고, 문학을 즐겼다고 합니다. ‘죽림고회’는 이인로, 임춘(林 椿), 오세재(吳世才), 조 통(趙通), 황보항(皇甫抗), 이담지(李湛之), 함순(咸淳) 등 일곱 사람이 망년(望年)의 벗이 되어 시와 술 그리고 차(茶)로 즐겨 ‘죽림칠현(江左七賢)’에 비유해 만들어진 이름입니다.

 

문학적 감수성과 능력은 뛰어났으나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을 많이 한 것으로 보이는 이인로는 《은대집(銀臺集)》, 《쌍명재집》, 《파한집》, 등을 남겼지만 《파한집》만이 전하고 있습니다. ‘심심풀이 파적(破寂)감으로 쓴 것’을 모은 책이라는 뜻의 《파한집》은 선현들의 명문장이나 수려한 문구(秀句)를 채록하고, 당시 ‘죽림고회’에서 함께 나누었던 시화나 문담을 자신의 자작시를 중심으로 수록한 것입니다. 최자(崔滋)의 《보한집(補閑集)》과 아울러 시평(詩評)을 곁들인 우리나라 최초의 시화(詩話)로 문학사적 가치가 매우 높습니다.

 

이인로가 죽은 지 40년 만인 고려 원종 원년(1260)에 그의 서자 이세황(李世黃)이 기장(機張)에서 간행하였는데, 고려시대의 각판 잔존본(刻板殘存本)으로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