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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기(許奇)
연수문화원
2015-07-31 17:50:35

당나라 황제의 성씨를 받아온 신라의 외교관

 

허기(許奇)

 

 

허기는 가야 김수로왕과 부인 허황옥(許黃玉)의 23세 후손인 가야 왕족으로, 신라 경덕왕 때 6두품의 아찬(阿粲)이었습니다. 허 씨인 허기가 어떻게 김수로왕의 후손인지 의아하시죠? 김수로왕의 부인인 허황옥(許黃玉)은 아유타국에서 온 공주였는데, 수로왕과 결혼하여 10명의 아들을 낳습니다. 그 중 장남인 거등은 왕통을 이었구요, 허왕후는 김수로왕에게 자신의 흔적을 남겨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해서 둘째와 셋째가 왕비의 성인 ‘허 씨’ 성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허 씨들은 가야의 왕족으로 가야의 중심세력이었다가 신라 진흥왕 때 신라에 병합되었으므로, 6두품의 귀족으로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허기는 경덕왕 15년(755년)에 당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됩니다. 그는 다음 해인 756년에 발생한 ‘안록산의 난’으로 인해 귀국하지 못하고, 당나라의 황제인 현종(玄宗)이 촉(蜀)으로 피난길에 있을 때, 황제를 호위하게 됩니다. 난리가 평정된 후에 허기는 그 공을 인정받아 황제의 성인 이(李)씨 성을 하사 받고 758년에 귀국합니다. 경덕왕은 그를 크게 칭찬하며 미추홀 땅을 주어 소성백((邵城伯)에 임명했다고 하지요. 이렇게 해서 인천 땅은 소성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고, 그 후손들은 문학산 주변인 지금의 연수동과 선학동, 문학동 일대에 자리 잡으며 큰 호족세력이 된답니다.

 

허기는 당 황제의 성인 이씨 성을 하사받은 것은 기뻤지만, 그 성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무척 고민스러웠습니다. 자신의 성인 ‘허 씨’는 허왕후의 흔적을 이어가기 위한 것인데, ‘이 씨’ 성을 사용하게 될 때는 그 성을 포기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결룩 허기는 이 씨와 허 씨 복성을 써서 이허기(李許奇)라로 쓰게 되었구요, 그의 후손들은 인천지역에서 호족으로 성장하며, 고려 현종 임금 때의 이허겸까지 10대를 이어왔는데 모두 ‘이허’라는 복성을 사용하게 됩니다. 그로 인해 인천 이씨들은 이허기를 득성조(得姓祖)로 여긴답니다.

 

 

 

-김수로왕의 부인 허황옥의 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