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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서노(召西奴 BC.66~6)
연수문화원
2015-07-31 17:48:26

고구려와 백제, 두 나라를 세운 국모

 

소서노(召西奴 BC.66~6)

 

 

단재 신채호 선생은 [조선상고사]에서 “소서노는 조선 역사상 유일한 창업 여대왕일 뿐더러, 고구려와 백제 두 나라를 세운 사람”이라며 극찬하고 있습니다. 소서노는 아마도 우리나라 역사에 등장하는 여성 중 가장 적극적이며 진취적이고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던 사람 중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서노는 졸본부여의 왕인 연타발(延陀勃)의 딸로서 북부여왕 해부루(解扶婁)의 서손(庶孫) 우태(優台)와 혼인하여 비류와 온조를 낳았다고 합니다. 일설에는 소서노가 고주몽과 혼인하여 비류와 온조를 낳았다고 전해지지요. 어느 설이 맞는지 확인이 쉽지 않지만 분명한 것은 소서노가 우태가 죽은 뒤 한동안 졸본에서 과부로 살았다는 것과, 부여를 탈출하여 엄리대수를 건너온 주몽과 재혼하였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그 주몽을 도와 연타발의 왕위를 계승하게 하고, 나라를 새롭게 고구려로 재탄생시켰다는 점과 그 아들들인 비류와 온조도 고구려 건국과정에 함께 했다는 것입니다.

 

압록강 중류와 비류수 일대의 강줄기를 장악하고 중계무역으로 기반을 잡았던 졸본부여의 왕인 연타발은 동부여 금와왕의 아들들에게 쫒겨 새로운 땅을 찾아온 젊은이 고주몽과 그 일행을 받아들입니다. 백발백중의 용사요, 비범하고 야망이 큰 고주몽은 연타발의 나라를 방어하고, 키우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겠지요. 그리고는 과부로 지내고 있던 자신의 딸 소서노와 결혼시켜 사위를 삼습니다.

 

물론 소서노가 먼저 고주몽을 만나고 후에 아버지에게 소개하여 전격적인 결합이 이루어졌을 수도 있고, 연타발이 고주몽을 범상치 않게 보고 자신의 딸을 시집보냈을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소서노가 고주몽과 함께 새로운 나라 건설에 적극 나섰다는 것입니다.

 

고주몽에게는 동부여를 도망 나올 때 함께했던 오이, 마리, 협보 등 세 부하와 도피과정 중 모둔곡에서 만난 재사, 무골, 묵거 등 여섯 사람이 자신을 지탱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고주몽에 대한 충성이 남달랐고, 지혜로왔습니다. 연타발이 맡기는 일들을 잘 수행했고, 신임을 받기에 충분하게 행동했습니다. 결국 왕과 졸본부여의 백성들에게 신임을 받고, 연타발의 왕위계승자로 결정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연타발의 딸이자 주몽의 아내가 된 소서노입니다. 소서노는 누구보다도 주몽의 비범함을 알았고, 20대의 젊은이 고주몽을 키워준 큰 그릇의 여성이었습니다. 소서노가 없었다면 고주몽이 졸본부여에 정착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며, 왕위계승은 물론 고구려 건국은 꿈도 꿀 수 없었을 것입니다.

 

소서노는 연타발이 가진 넓은 영토와 재물과 사람들을 아낌없이 고주몽의 왕위계승과 고구려 건국에 사용했습니다. 소서노는 이질적인 집단인 고주몽 세력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무마시키고, 재물과 땅으로 회유하면서 주몽의 사람들로 만들어 갔습니다. 비류와 온조도 어머니 소서노를 도와 BC 37년 고구려가 창업되도록 했으며, 그 후 고주몽의 왕권 강화에 기여했습니다. 고주몽은 이들 세 사람의 도움을 받으며 내부적 안정을 이루어 나갔고, 주변의 말갈을 물리치고 불류국(비류국), 행인국을 복속하는 등 영역을 넓히고, 주변의 위혐 요소를 제거해 나가며 나라와 왕권의 강화시켜갔습니다.

 

그러나 주몽이 부여에 있을 때 혼인한 예씨(禮氏)의 소생 유리(類利)가 고구려로 와서 태자로 책봉됨에 따라, 왕위계승권을 잃어버린 비류와 온조가 새로운 국가의 건설을 위하여 남하하여 나라를 세우게 됩니다. 소서노는 아들들과 남하하여 백제 건국을 돕고, 온조왕 13년(서기전 6) 61세로 생을 마감합니다. 이처럼 소서노는 고구려 건국과 백제 건국의 어머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