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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구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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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항 이후의 변천과정
연수문화원
2015-06-15 14:24:00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면서 우리나라는 주권을 일본에게 빼앗겼다.
외교권박탈은 물론이고 통감부설치에 의해 정치권을 박탈당하고 이사청이 신설돼 지방행정도 일본인들의 손에 넘어가게 되었다. 인천지역도 1906년 6월 행정조직 개편작업이 이루어지는데 이때 먼우금면이 서면으로 개칭되었다. 이것은 먼우금면이 인천구읍의 서쪽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일제는 이때부터 의도적으로 우리나라 각 지방의 토박이 땅이름을 바꿔버리거나 혼란스럽게 만드는데 예를 들면 척전마을(척천리)을 서면 3리, 동막마을(동막리)을 서면 4리 식으로 개칭했던 것이다.

1914년 4월 1일 전국지방행정구역 조정을 단행한 일제는 자유공원 일대(개항장일대)만을 인천부라 하고 나머지 인천과 부평 전 지역을 묶어 부천군이라 칭했다. 부천이라는 명칭은 부평의 ‘부’자와 인천의 ‘천’자를 따서 만든 지명이었다. 이에 따라 연수구 전역은 부천군 문학면 관할이 되었다.

1930년 일제는 인천의 행정구역을 확장했는데 이때 문학면의 일부 옥련리와 다주면(주안 일대) 대부분을 인천부에 편입시켰다. 이때 옥련리는 송도정이라는 일본식지명으로 바뀌게 되었다.

1940년 4월 1일부로 부천군 문학면, 남동면, 부내면, 서곳면 전역이 인천부에 편입되고 편입됨과 동싱에 대부분 마을이름이 일본식 지명으로 바뀌었다. 연수리는 연수정으로, 동춘리는 동춘정으로, 도장리는 무학정으로 변경된 것이다. 

그 후 연수지역은 1943년 설치된 인천부 문학출장소 관할로 묶여 있다가 해방 후인 1946년부터 현재의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