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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구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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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의 우리고장
연수문화원
2015-06-15 14:24:00
조선 건국과 동시에 경원부는 다시 인주로 강등 환원되기에 이른다. 그러다 인천군으로 개칭된 것은 1413년 태종 13년 당시 전국의 지방행정조직을 정비하면서 고을 이름 중 주(州)로 끝나는 것이 너무 많아 산(山)이나 천(川)으로 끝나도록 개명함으로써 고을의 등급을 명확히 했는데, 이후 인천이란 이름으로 남게 되었다.

세조 6년(1460)에는 다시 인천도호부로 승격되는데 이때 이후로 조선말까지 인천은 도호부의 지위를 유지하게 된다.

인천도호부청사는 남구 관교동 146번지(문학초등학교 교정 안)에 위치해 있고 조선초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조선시대의 인천역사는 인천도호부가 있는 관교동을 중심으로 전개되어 왔기 때문에 연수구에는 그다지 주목할 거리가 없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인천부사로 왜적을 물리치는 데 공을 세운 김민선 장군(부평 출신)과 그가 문학산성을 다시 쌓았다는 이야기가 내려오고 있으며, 김민선 장군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지었다는 안관당, 또 왜적들이 문학산성을 공격하기 위해 수리봉 정상 부근에 쌓았다는 왜성터의 흔적 등은 중요한 유적으로 남아 있다.

조선시대 연수구에 나타난 특징으로는 곳곳에 특정 씨족들이 자리를 잡고 번성하며 자연부락을 형성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조선 훅에 수많은 판서대감과 정승을 배출해낸 동춘동 일대의 영일정씨와 동춘동의ㅣ 제주고씨를 비롯하여 청학동의 경주쵰와 박남박씨, 옥련동의 전주이씨와 덕수이씨, 선학동의 부평이씨 등이 그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