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사

연수구의 역사

게시물 검색
◈ 삼국시대의 인천과 연수구
연수문화원
2015-06-15 14:23:00
비류가 세운 미추홀왕국이 와해되고 온조백제와 병합되면서 백제의 영토는 날로 넓어져 갔다. 백제는 한강 하류지역을 중심으로 세력을 확장해 나갔다. 고구려 장수왕의 공격으로 수도를 웅진(곰나루=공주)으로 옮길 때까지 무려 493년 간 백제의 수도는 한강하류인 하남 위례성이었다. 백제는 중국과의 통교를 위해 바닷길을 열었는데 중국으로 보내는 사신들이 출발하던 곳이 바로 능허대(연수구 옥련동 194-54번지)였다. 사신들은 한성을 출발해 별고개(별리현, 이별고개:만수동)를 넘고 사모지고개(문학산과 연경산사이의 고개)를 넘어 능허대까지 도착하곤 했다. 이러한 사실은 각종문헌을 통해서 전해질 뿐 아니라 조상 대대로 전해지고 있는 이야기임이 이곳 촌로들에 의해 확인되기도 했다.

고구려 장수왕이 한강유역을 장악한 이후 고구려의 영토가 되었고 매소홀(買召忽)이라고 불렸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에는 중국과의 뱃길을 당항성(경기도 남양)을 통해 열었으므로 이곳은 신라의 변방에 지나지 않았다. 통일신라 말기 인주(인천)이씨의 조상인 ‘허기’라는 사람이 중국에 사신으로 갔다가 큰공(안록산의 난<756년>이 일어났을 때 현종의 피난길을 도움)을 세우고 당 현종으로부터 상으로 ‘이(李)’씨 성을 하사 받고 왔다. 신라경덕왕은 크게 기뻐하며 소성백에 봉하였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인천은 소성(?城)이라 불리게 되었다. 이때부터 새로운 이씨들이 탄생했으며 이들 이씨들은 문학산 주변 연수동, 선학동, 문학동 일대에 뿌리를 내리고 살면서 고려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이시기 소성현은 율진군(栗津郡;과천)의 관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