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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구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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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수구의 지형적 특색
연수문화원
2015-06-15 14:21:00

연수구는 문학산맥의 남쪽에 위치하고 서쪽으로는 서해바다에 인접하고 있다. 남동쪽으로 남동공단과 맞닿아 있으며, 수봉산에서부터 시작된 승기천이 자연경계선이 되고 있다.

문학산맥의 서쪽 끝 봉우리인 서달산에서부터 동쪽으로 노적산, 연경산, 문학산, 수리봉, 길마산 등이 길게 이어져서 마치 학이 날개를 편 모습과 같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주변에 청학동, 선학동, 학익동, 문학동 등 학과 관련된 마을 이름이 유난히 많다.

문학산맥의 연경산 남쪽줄기는 남서쪽으로 청량산과 봉재산을 일으킨 후 동춘동 동막마을에서 그친다. 청량산(170m)은 높지 않지만 우리나라 서해안의 명산으로 손꼽힌다. 아암도에서 바라보는 청량산의 자태는 서서히 꿈틀거리는 청룡의 옆모습인 듯 빼어나다. 위풍당당한 청량산의 기세는 서해바다와 중국대륙을 향해 용트림을 하는 듯 신비로운 위엄이 있다. 그 옛날 바닷길을 열었던 백제인의 숨결은 청량산 북서쪽으로 돌출된 능허대와 한나루를 통해 전해지고 있다. 이곳은 실제로 백제 사신들이 중국과의 통교를 위해 이용하던 장소로, 귀 기울이면 바닷길을 열었던 백제인들의 당당한 몸짓이 전해져 오는 듯하다.

갯벌과 함께 해온 우리 조상들의 삶이 응어리져 자연부락의 역사로 간직돼 오고 있는 산이 봉재산이다. 봉재산은 청량산에 바로 연이어 있다. 산 주변에는 동막, 자앞, 시듬물, 박짓뿔 등의 자연부락이 남아 있어, 대부분의 자연부락이 사라진 지금도 주민들은 옛날과 다름없이 갯벌에 나가 어패류를 잡고 있다. 송도신도시 건설로 갯벌이 매립되고 있어 옛 정취가 사라진 지는이미 오래고 2006년 이후면 송도 앞바다 조개잡이는 역사 속으로 사라질 운명에 처해있다.

문학산 정상에서 남동쪽으로는 해발 100m미만의 구릉들이 승기천까지 흘러내리고 있다. 이 산줄기는 문학산 정상에서 함박초등학교, 문남마을, 대명아파트, 배수지산, 적십자병원, 솔안공원으로 이어지는 능선이다. 이 산줄기가 끝나는 곳에 까치섬이 우뚝 솟아 있다. 연화부수지라하여 인천 최고의 명당자리로 일컬어지는 이곳에는 현재 인천이씨의 중시조 이허겸의 묘가 안장돼 있다.

승기천은 연수구와 남동구의 자연경계선이다. 승기천은 문학산 북쪽의 문학동, 관교동 지역의 물과 주안동, 구월동 일대의 물이 합쳐져 흐르는 강이다. 이 강물은 선학동을 지나 연수동, 청량동, 동춘동 지역을 남동공단과 갈라놓으며 승기하수처리장 유수지로 모였다가 정수된 물이 서해로 빠져나간다. 예전에 승기천하구는 선학동이었다. 그러나 바닷가였던 이곳이 매립되어 남동공단과 연수택지지구가 조성됨으로써 강하구가 동춘동으로 바뀌게 되었으며 강의 길이도 더 길어졌다. 바다를 매립하기 전만 하더라도 연수구는 산줄기 사이사이로 바닷물이 들어오는 전형적인 해안마을이었다. 따라서 이곳에 살던 조상들은 바다를 적극 개척해 왔다. 갯벌에서 가무락, 대합, 동죽, 바지락, 맛살, 꽃게, 숭어, 낙지, 망둥어 따위를 잡는 한편, 방죽을 쌓아 농경지를 확보하려 애써왔다. 이곳은 또한 일제시대에 들어서면서 대규모의 천일염전이 조성되어 인천을 소금의 산지로 만드는 주역이 되기도 한 곳이다.

이 염전들을 다시 농경지로 만들기 위해 방죽을 만들고 수로를 내려 노력해 왔다. 주어진 자연 조건을 파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활용하고 변화시켜서 삶의 터전을 풍요롭게 만들고자 노력해 온 것이다.

지금 연수구는 산줄기 사이로 거대한 아파트단지가 들어선 인구 26만이 거주하는 거대한 도시가 되었다. 불과 몇 십 년 사이에 농촌에서 도시로 탈바꿈한 연수구의 옛모습은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나 문학산, 청량산, 봉재산 등은 연수구의 훌륭한 산소탱크가 되어주고 있으며, 서해바다의 비릿한 갯벌내음은 바닷바람을 통해 연수구를 가른다.